정토교학의 의의(意義)
淨土敎는 어떠한 학문인가 라고 하는데 대한 해답으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간단히 말한다면 「淨土敎學은 불교의 내부에 있어서 성립 전개된 부처님의 淨土에 관한 敎說을 총합적 조직적으로 연구를 하는 학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일본에 있어서 「淨土」라고 말하면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를 가르치고 있지만 불교 여러 경전 중에는 서방정토 외에 동방정토 現世淨土를 설하는 가르침도 있고 또 정토는 土(國土)를 밝히는 가르침이라고도 이해하기 때문에 우선 최초에 「淨土」는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을 해명하고자 한다.
불교의 여러 經論을 보면 「淨土」라고 하는 문자는 곳곳에서 보여지고 있지만 그 用法을 크게 나누어 보면 2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一)은 「淨土」의 「淨」을 動詞로서 사용된 경우이고 그 (二)는 형용사로서 사용되는 경우이다. 「淨」을 動詞로 사용된 경우는 「土(國土)를 깨끗이 한다」라고 하는 의미이고 형용사의 경우는 「깨끗한 土(國土)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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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佛土의 意義
우선 처음에 「淨土」의 「土」라고 하는 말은 무엇을 가르키는가 라고 하는 것에 원래 「土」라는 것은 불교에서는 國土 佛土 穢土라고 하여 부처님 또는 迷한 인간이 사는 세계를 말한다. 따라서 迷한 인간이 사는 세계를 穢土 穢國이라고 말하며 부처님이 거주하는 세계를 佛土라고 부르며, 또는 佛國土, 佛國, 佛界, 佛刹이라고도 말한다. 이 佛土(佛刹)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깨달음」을 열은 부처님이 사는 청정한 세계라고 하는 의미 외에 부처님이 迷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출현하시는 迷의 세계도 「佛土」라고 부른다. 이것은 부처님이 교화(제도)의 대상이라고 하는 세계라 말하고 그 세계는 오염된 세계이기 때문에 깨끗한 세계로 하기 위해 迷한 중생이 사는 세계에 출현하신다. 따라서 이 경우 佛土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청정한 국토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즉 佛土라고 하는 말에는 (一)부처님께서 만든 청정한 세계라고 하는 의미 외에 (二)迷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출현하신 세계 즉 오염된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佛土는 爭穢를 묻지 않고 부처님이 머무시는 세계를 말하며 정토는 그 중의 청정한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요약한다면, 「土」는 佛 및 중생이 머무는 세계를 의미하는 말이고 爭穢를 포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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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國土를 맑히는 意義
그러니까 淨土의 「淨」은 動詞라고 한 경우의 「國土를 깨끗이 한다(맑힌다)」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것을 말하는가 하면 이것은 오염된 세계를 맑히는 것이고 이것에 (一)중생이 사는 세계(此土)를 맑게하여 청정한 나라로 하는 것과(二)이 세계와는 다른 청정한 정토를 만들어 거기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 있다. (一)이 세계를 청정한 곳이라고 하는데 관해서 불교 경전에서는 이것을 부처님의 교화활동(중생제도)으로서 말하는 것이지만 주로 보살(대승불교의 수행자)의 활동으로 말하고 있다 『放光般若經』第十九建立品에서는
須菩提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떻게 잘 佛土를 맑힙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初發意(初發心)이래 늘 身·口·意를 깨끗이 하고 따라서 他人을 감화시켜 身·口·意를 깨끗이 하게 하며...... 이런 까닭에 보살은 衆惡을 버리고 스스로 六波羅密을 행하며 또한 다른 사람에게 권해 六度를 행하게 하며 이 공덕을 가지고 중생과 함께 불국의 淸淨을 구한다.
라고 하며 「佛土를 청정히 함」을 말하고 있다. 『放光般若經』에 의하면 보살이 佛道를 수행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身·口·意의 삼업을 청정히 함과 더불어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쳐 身·口·意의 삼업을 청정하게 하고 더욱 그 머무르는 세계를 청정한 나라로 하고져 하는 것이다. 身·口·意 삼업을 청정한 것으로 하고져 하는 구체적인 실천덕목으로서 일반에게 바라밀의 행이 설해지고 있다.
6바라밀은 혹은 六度라고도 말하며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받드는 보살(수행자)이 실천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六種의 덕목으로 보시바라밀·지계바라밀·인욕바라밀·정진바라밀·선정바라밀·지혜바라밀이다. 波羅密이라는 것은 산스크리트語의 파-라밑다-(paraita)의 音寫이고 波羅密多라고도 쓰고 到彼岸, 度無極이라고 중국에서 번역하고 있다. 迷의 此岸(세계)에서 「깨달음」의 彼岸(세계)에 도달한다는 의미이고 일반으로 보살이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 수행하는 行이다. 이 경우의 六波羅密은
一. 布施波羅密-衣食 等의 物資와 敎法을 佛과 僧과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말하며 탐심을 일으키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베푸는 것을 말한다.
二. 持戒波羅密-부처님이 설한 敎誡와 敎團의 (律儀) 등을 완전하게 지키는 일.
三. 忍辱波羅密-타인으로부터 侮辱과 피해를 받아도 깊이 참고 조금도 성내지 않으며 또 곤란한 경우를 만나도 마음이 동요됨이 없이 「깨달음」을 구함에 멈춤이 없는 것.
四. 精進波羅密-불도수행의 완성을 목표로 계속해서 선행에 힘쓰는 일.
五. 禪定波羅密-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사물의 도리를 깊이 思惟하는 것으로 보살이 般若의 지혜 또는 신통을 얻기 위해 수행하며 冥想하는 것.
六. 知慧波羅密-일체의 사물과 대상의 正邪를 결정하여 번뇌를 끊는 정신작용으로 인간적인 理性을 초월한 「깨달음」의 知慧의 일.
이 외에 方便波羅密·願波羅密·力波羅密·智波羅密의 四波羅密을 더해 十波羅密이라고도 한다. 결국 대승불교를 신봉하는 보살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경우의 행이다. 이러한 실천 덕목을 행하여 자기 자신을 身·口·儀의 삼업을 청정하게 함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도 이것을 설해 가르치고 그런 사람들의 身·口·儀 삼업을 청정하게 하고 또 이 세계를 청정한 나라(社會)로 하고져 하는 것이다. 즉 「淨土」의 「淨」을 動詞로 이해할 경우는 대승불교의 보살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음에 (二)보살이 이 세계와는 다른 곳에 청정한 세계를 만들려 하는 것으로 「土」를 청정히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이 세계는 五濁의 더러움으로 가득한 세계이며, 疫病·飢饉·寒暑·鬪爭 等이 있고 또 不淨不潔이 있기에 참된 樂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은 모두 단명하고 세상은 전부 무상하여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더러움과 不淨이 없는 이상적인 청정 安樂世界를 이 세계(穢土)밖에 만들어진 것을 말한다. 『無量壽經』卷上에서는
時에 世饒王佛(世自在王如來)는 法藏比丘에게 告하기를 『너가 수행할 곳의 佛國을 장엄하는 청정한 행은 너 스스로 알리라』比丘(法藏)이 부처님께 여쭈기를 『이 뜻 깊어 저희 境界에 맞지 않습니다. 오로지 원하옵나니 世尊이시여! 널게 살피시어 諸佛如來의 淨土의 行을 敷演하소서 저희들 이를 듣고 마땅히 설하신바와 같이 수행하여 소원을 이루고져 하나이다.』
라고 설하고 있다. 여기서 「諸佛如來의 淨土의 行」이라고 하며 또 「佛國을 장엄하는 청정의 행」이라 하는 것은 보살의 행이지만 이것은 현세와는 다른 別處에 淨土를 만들고져 하는 것으로 이것을 「淨土의 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國土를 청정히 하는」「淨土의 行」이라고 하는 경우에 現世를 청정한 나라로 하고져 하는 것과 현세와는 별도의 다른 곳에 청정한 나라를 만들고져 하는 것의 두 가지의 의미가 있지만 어느 것이나 보살의 수행을 말하기 때문에 「淨」을 動詞로서 본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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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淸淨한 國土의 意義
다음에 「淨土」의 「淨」을 형용사로서 이해한 경우는 청정한 국토 청정한 세계라고 하는 것으로 穢土·穢國에 대하여 사용되는 말이다. 이것은 大乘의 보살이 長年의 수행을 완성하고 드디어 성불하여 만든 청정한 세계를 말한다. 吉藏의 『大乘玄論』第五에서는
정토의 필경 제불보살의 所潔의 영역으로 衆生이 돌아갈 바이니,
라고 말하며, 道世의 『諸經要集』第一에는
세계의 皎潔을 보고 淨이라 하며 그리고 淨의 所居를 이름하여 土라 한다.
라고 설하고 있다. 즉 淨土는 佛과 보살이 머무르는 청정한 세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세계는 더러움과 迷의 相과 惡行惡想이 없고 일체의 모든 것이 청정으로 더없이 아름답고 깨끗한 境域이기 때문에 그 부처님의 세계를 정토라 한다.
이와 같이 「淨土」라고 하는 단어는 動詞로서 볼 경우와 형용사로서 볼 경우와의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 말한 경우의 정토는 第二의 청정한 국토의 것으로 대승보살이 수행하는 波羅密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정토의 존재를 설한 가르침에는 단지 北方으로 전래된 대승불교 가운데에서 싹터 발전되었고 스리랑카, 미얀마 등에 전해진 南方佛敎와「깨달음」에 들어서 心身 모두 함께 空, 無로 돌아가는 회신멸지(灰身滅智)인 것을 설한 소승불교에 있어서는 볼 수가 없다. 대승불교에서는 많은 佛道 수행자(보살)가 있음을 설하며 도 수행(보살도)를 완성하고 깨달음을 연 부처님이 多數 있음을 설할 때부터 많은 淨土의 존재가 설해지고 있다. 『아미타경』에서는 東·西·南·北·上·下의 六方에 각각 많은 부처님이 계시고 제각기 정토를 만들어 계심을 설해 밝히고 있다.
다시금 이 異譯經典에서는 이 六方에 東南·西南·西北·北東의 四隅를 더해 十方에 부처님의 세계가 있음을 설하고 있는 것처럼 대승불교에서는 많은 부처님의 존재를 설할 뿐만 아니라 十方의 무수한 정토가 있음을 설하고 있다. 또 『十住毘婆娑論』第九「易行品」에서는 善德佛 以下百三佛의 존재를 설하며 『三千佛名經』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三世에 각각 千佛이 출현한 것을 설할 경우는 모두 이 예이며 이 經에 의하면 過·現·未의 三世에 三千의 정토가 존재한다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대승불교에서는 十方에 많은 부처님이 계시고 淨土도 또한 무수하게 있지만 인도 중국 일본의 三國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실제로 신앙된 것은 옛날 阿 如來 및 그 정토를 妙喜世界 미륵보살의 兜率天 및 아미타불의 서방정토의 신앙이다. 그 중에 가장 넓고 오래 되었으며 또 현재도 강하게 신앙되고 있는 것은 아미타불 신앙이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 淨土敎라고 말할 경우는 아미타불 신앙 이 외의 정토를 설한 모든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지만, 아미타불 신앙만은 정토에 관한 모든 신앙의 中心 主流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명칭을 독점하고 있다.
上述한 바와 같이 아미타불의 정토신앙 외에 불교경전에서는 여러 가지의 정토 및 부처님의 존재를 설해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타방정토설(他方淨土說)·영장정토설(靈場淨土說)·범신론적(汎神論的) 정토설(淨土說)로 분류해 다음에 略述하고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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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자세한 자료를 원하시면
여래장 출판의 정토교개론(한보광역)서적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