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와 아미타불
(1)정토의 명의(名義)
정토교에서 밝히는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는 安樂·極樂·安養·樂邦이라고도 불러지고 있다. 이것은 산스크리트語의 스구하바티 (sukhavati)의 번역으로 직역하면 「樂有」(즐거움이 있는 곳)라고 하는 의미이다. 安樂極樂이라고 하는 것은 의미를 중심으로 생각하여 번역한 것(의역)이다.
정토교의 근본 성전인 『무량수경』에서도 「安樂」이 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관무량수경』과 『아미타경』은 「극락」이 라고 칭하고 있다.
이 외에 경전에 의해 「無量淸淨土」 「無量壽國」 「阿彌陀由國」이 라고 칭하는 것이 있지만 이것은 언제라도 무량청정불 또는 무량수불(언제나 아미타불의 異名)이 住하는 국토라고 하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닐런지.
원래 정토라 하는 말은 「청정한 국토」라고 하는 의미 외에 上述한 바와 같이 「국토를 맑한다」라고 하는 의미를 밝힐 경우도 있지만 지금 말하는 곳은 인간이 住하는 세계가 더러워진 迷의 세계라는데 대하여 佛이 머무는 세졔는 「깨달음」에 의해 형성된 국토이기 때문에 이것을 「청정국토」 「淨土」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정토라는 알은 「淨土三部經」에서는 볼 수가 없다. 『아미타경』의 異譯인 玄獒譯에 『稱讚淨土佛攝受經』이 라고 하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만 보여질 뿐이다.
원래 대승불교에저 설하는 보살도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가르침을 받들어 육바라밀의 수행을 닦으면 「깨달음」으로 부처가 될 수 있으며, 정토를 만들수 있다고 설하고 시방세계에 많은부처님과정토의 존재를 說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淨土」라고 한 경우는 광의의 諸佛淨土를 가르치고 있지만, 아미타불신앙이 성행되고는 오직 이 명칭을 독점하게 되었다. 현재는 「정토」라고 말하면 단지 아미타불의 서방극락 정토를 가르치게 되며 또는 淨土敎라고 하떤 「西方淨土」에 관한 가르침을 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음에 「安樂」이 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진 단어인가 하는데 대해서 『무량수경』에서는 법장보살은 이미 성불하여 서방에 계신다. 여기를 가려면 十萬億刹을 지나야 된다, 그 국토를 이름하여 安樂이라고 한다. 라고 설하고 그 명칭을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宏의 『아미타경소초(만속장.33.2)』에서는
法華의 疏에 말하기를 몸에 위험이 없는 것이 安이며 마음에 憂惱가 없는 것이 樂이다.
라고 해석하고, 또 義山의 『無量壽經隨聞講錄』(淨全14권365)에서는
마음을 편하게 즐거움을 받으므로 安樂이라 한다.
라고 설하고 있다. 즉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는 지옥. 아귀. 축생의 괴로움이 없으며 身心 모두 安穩하기 때문에 安樂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 「樂」은 人爲的인 것이 아니고 자연 法爾의 絶對樂이라고 말한다. 다음에 극락이라고 하는 말은 『관무량수경』 및 『아미타경』에서 사용된 명칭으로 『관무량수경』에서는
우리는 지금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의 곳에 태어닌다.
라고 말하고 『아미타경』에서는
그 나라를 어떠한 연유로 극락이 라고 하는가, 그 나라의 중생은 많은 고통도 없으며 오직 모든 즐거움만을 받기 때문에 극락이라고 이름한다.
라고 하여 아미타불의 국토를 극락이라고 이름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 극락의 「極」이 라는 것은 「究極」「最上」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이 이상의 樂은 없다고 하는 구극위 樂인 것올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安樂어라던가 극락이라고 말하는 경우의 「樂」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세졔와 같이 苦樂相對의 樂이 아니고, 이것을 초월한 絶對樂을 말하는 것이다. 「淨土三部經」에서는 지하'지상'허공에 겉쳐 칠보로 장엄된 風光華麗하고 미묘한 극락세계를 붓을 다해도 말로서는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왕생한 사람들의 一生補處의 德. 諸佛係養의 德, .聞法의 德, 自利利他의 德등어 얻어짐을 밝히고있다. 이것은 언제나 淨土의 絶對樂을 표상적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源信은 『往生要集』(정전15권卷54)에서 淨土의 安樂을 정리하여 十樂으로 말하고 있다. 이 十樂이 라는 것은
一. 聖衆來영樂; 命을 마칠 때에 맞이 하는 아미타불은 관음 세지의 두 보살과 함께 나타나 淨土로 맞이 하는 것.
二. 蓮華初開樂; 연화에 둘러쌓여 정토에 왕생하여 연화가 열려 처음으로 정토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
三. 身相神通樂; 인간보다 뛰어난 三十二相好와 五種類의 선통력을 얻는 것.
四. 五妙境界樂; 五根(五感의 器官)의 대상이 모두 勝妙의 세계인
五. 快樂無退樂; 뛰어난 樂을 받고 窮한 일이 없는 것,
六. 引接結緣樂: 앞서 緣을 맺은 사람들을 정토로 맞이 하는 것.
七. 聖衆俱會樂: 보살이 라고 하는 수승한 聖者와 같은 곳에 머무르는 것.
八. 見佛聞法樂: 쉽게 부처님을 뵐 수 있고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것.
九 隨心供佛樂: 마음에 생각한 그대로 자유로 十方諸沸의 정토에 가서 부처님에게 공양할 수 있는 것.
十. 增進佛道樂: 수행이 저절로 되고 따라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
이 외에 경전과 釋書에서는 여러 가지 표현으로 정토의 절대락을 설 하고 있지만, 이것은 인간세계와 같은 고락의 상대인 樂이 아니고 인간 외 思惟(思盧)를 떠난 絶對樂임을 나타내고 있다.
▲TOP
(2) 阿彌陀佛의 名義
아미타불은 산스크리트語의 音을 그대로 한자에 맞춘것(음역)이지만, 일반으로 무량수불, 無量光佛이라고도 하며 또 때로는 盡十方무애光鎰來, 不可思議光如來(眞宗)라고도 부르고 있다. 현존의 산스크리트語 경전의 어느 것을 보아도 아미타불이라는 명칭은 없고 아미타브하(Amitabha 無量光) 또는 아미타-요스(Amityus 無量수)라고 되어 있다. 아미타브하라는 것은 「無量의 광명이 있는 것」라고 하는 말이며, 아미타-요스는 「無量」의 수명 이 있는 것」 라고 하는 말로서 아미타(Amita)만으로 r無量」이라고 한다. 따라서 아미타불이 라는 原語의 의미로는 無量佛이다고 하게 되며, 무엇이 無量인가 德性을 알지 못하는 부처님을 말하게 된다. 이것에 대해 『아미타경』에서는
이 부처님을 어떤 연유로 아미타불이라고 부르느냐. 舍利弗아 이 부처님의 광명은 無量하여 十方의 나라를 비추어도 장애가 없기 때문에 이름하여 아미타라고 한다. 또 사리불아 이 부처님의 수명과 그 나라 (인민의 수명)은 無量無邊阿僧祇劫이기 때문에 아미타라고 이름한다.
라고 한다. 무량의 광명과 무량의 수명인 德性을 가진 부처님이기 때문에 아미타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면 광명, 수명의 두 덕성을 가진 부처님을 왜 이 덕성을 나타내는 말을 제외하고 아미타라고 부르며 산스크리트語를 그대로 음사하여 사용했는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생각되어 진다.
원래 아미타불의 명칭이 中國역의 불교경전에 사용된 최초는 吳의 支謙(223-282)이 번역한 경전에서 처음으로 있는 것 같다. 여기에는 阿 (一名, 大阿彌陀經)이라고 이름하고 있다. 또 『반주삼매경』 三卷本 一卷本(모두가 支婁迦讖勵에도 아미타인 명칭을사용한기 때문에 中國譯의 경전으로는 대개 3세기 경부터 사용되어 왔다고 알려져 있다. 또 初期經典飜譯者의 譯語에서 사용된 예를 보면, 支謙은 아미타불, 無量佛, 無量壽佛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지루가참은 아미타불, 무량'청정불이라고 번역했으며, 佛馱跋陀羅(覺賢)은 『화엄경』에서 아미타불무량수불 무랑광불의 3종류의 말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때는 아미타불인 고유의 原語가 있지 않았는가 라고 상상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원어의 존재로 보여지는 산스크리트 경전은 불 수 없다. 아마도 아미타불인 佛名은 번역자가 경전을 역출할 때에 만든 단어로 서 아미타가 무량한 광명과 수명 및 무량의 권속과 청정 둥의 많은 덕성을 가진 부처님이기 때문에 이러한 덕성을 모두 포함한 부처님을 나타내기 위해 아미타불타(Amita-budaha)인 단어룰 창작하여 이것을 그대로 음사한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되어 진다. 그러나 일반으로 「무량의 광명」과 「무량의 수명」의 두 덕성을 가진 부처님으로서 숭앙되어 지고 있다.
▲TOP
(3) 아미타불 신앙의 기원
정토교의 신앙 대상인 아미타불 및 극락정토의 신앙과 사상이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떠한 이유로 일어났는가 라고 하는 문제는 정토교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연구 命題로서 洋의 東西를 막론하고 많은 학자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연구에 종사해 왔다. 그렇지만 문헌 자료의 대부분이 없어진 古代 인도에서 이 신앙의 기원을 探索하는 것은 지극히 곤란한 일이다. 아마 정확한 결론을 보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起源의 문제에 관해서 그 중에 대표적이라고 생각되어 지는 것을 간추려 보고져 한다.
아미타불 신앙이 인도본토 스리랑카 버마 태국 등 南方의 여러 지역에서 볼 수가 없다. 또한 중국으로 부터 멀리 육로 또는 해로로 인도에 여행한 法顯 현장 義淨 둥의 인도 여행에 관한 기록에서도 아미타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중국에 傳來돤 불교 가운데 특히 대승 불교 경전 중에서 많이 설해 지고 있다. 이러한 대승불교 경전은 주로 카시밀 및 네팥 지방으로 부터 전래된 것이 많기 때문에 이 지방에서 아미타불 신앙이 발생했을 것이다 라고 하는 설이 있다.
원래 이 카시밀(kashmir) 간다라(gandhdra) 등의 西北 인도는 일찍부터 이란의 종교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기 때문에 아미타불 신앙의 기원을 이란의 고대 신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라고도 한다. 이 학설은 주로 유럽의 동양연구 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아미타불의 一名인 아미타브하(Amitabha)는 무량의 광명을 가진 부처님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 觀念은 이란의 태양 숭배의 영향에 의해 성립된 것으로 원시 대승불교의 보호자인 스기샤族 및 이란人은 모두 태양숭배의 종족이었기 때문에 아미타불신앙은 太陽神活에서 유래한다고도 발한다. 또 아미타불인 佛格은 釋尊으로 부터 連想된 佛이지만, 이란의 오르마쯔인 神은 無限의 광명을 가진 神이기 때문에 이 神의 觀念이 불교의 가운데 들어와 발전 변천해서 아미타붙인 佛을 생기게 하지 않았는가 라고도 말하여 지고 있다. 이러한 이란의 古代宗敎에서 아미타불인 佛의 起源을 찾으려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인도 內部의 思想에서 찾으려 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주로 일본의 불교학자들이다. 그것은 베다聖典에서 설하는 야마(yama耶摩) 天은 無上幸福의 곳이며, 또 安穩不死의 세계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야마의 本體는 태양으로 무한의 광명을 가졌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의 광경은 야마天의 상황을 좀더 誇大 하게 기술했다고 생각되는 곳이기 때문에 아미타불신앙의 기원을 이 야마天에서 찾으려고도 한다. 이 밖에 梵天의 신화에서 起源을 찾으려는 설도 있다. 梵天의 세계에서 서술하고 있는 梵天王의 玉座의 觀念이 無量光의 觀念으로 계속되며, 또 玉座를 푸라나(prana生氣)라고 부르는 點이 無量壽의 觀念에 결합된다고 한다. 다음으로 어떤 학자는 인도의 비슈뉴(visnu)神話에서 기원을 찾아, 이 神의 신앙이 아미타불인 佛을 만들지는 않았는가 라고도 한다. 이 외에 西方의 守護神 바루나(varuna)와의 연관볼 찾는 설 또는 아그니(Agni)神의 호칭과 관계를 찾는 설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아미타불인 佛의 起源에 대하여 유럽 학자는 주로 이란의 고대종교에서 淵源을 찾으며 일본의 학자는 인도의 고대종교에서 찾고 있지만, 지금 바로 어느 것이 적절한가 한 것을 결정할 수는 없다. 아미타불신앙이 인도 문화권 가운데서 興起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西北 인도는 古代의 인도 문화의 발생지 임과 동시에 이란 문화와의 接觸지대였기 때문에 불교사상이 발전된 인도 사상에 이란, 그 밖의 外來思想이 첨가되어 아미타불인 佛格이 생겼다 라고 생각되어 진다.
다음으로 아미 타불신앙이 발생한 故地가 西北인도라고 하는 것은 중국에서 아미타불경전을 전한 번역승의 傳記로 부터 충분히 살펴 볼 수 있다. 아미타불경전을 전한 지루가참 축법호 鳩摩羅什 覺賢 등의 四世 紀以前에 사람들의 傳記를 보면 언제나 西北 인도와 인연이 깊다. 이렇게 아미타불 경전을 전한 사람은 그 출생지를 또는 璇學地에 있어서 아미타불 신앙을 貝聞하지 않았을런지 전연 見聞하지 않았던 경전을 번역한다 라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인도 본토, 스리랑카 또는 西方아시아 방면에서 이러한 신앙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볼 수 없기 때문에 西北인도를 가지고 아미타불신앙의 발생지라고 결정하는 점에 異義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西北인도의 어떠한 곳에서 발생했는가라는 점은 밝힐 수가 없다. 역시 언제부터 이러한 신앙이 발생했는가 라고 하는 成立年代에 대해 서 볼 때 이것 또한 異說이 많아 알 수 없다고 말한 상태이지만, 대체로 紀元前後경에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 定說인 듯하다. 이것은 중국에서 번역된 경전에 기반해서 類推하는 설이다. 아미타불에 관한 경전이 중국에시 번역된 최초는 支婁迦讖譯(147~186)위 『般舟三昧昧 및 『無量淸淨平等覺經』이다. 계속해서 支謙(223~282)에 의해 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八道經』二卷이 번역되었다. 따라서 二世紀의 中頃 또는 二世紀의 初에는 대개 아미타불경전이 중국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신앙이 年代的으로는 어느 頃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가 라고 하는 것에는 명확한 자료가 현존하지 않지만, 중국의 經典 飜譯史에 있어서 불교경전과 論書가 인도에서 편찬되어 중국에 傅來되기 까지 무릇 100年 내지 200年을 경과 했다. 이렇게 볼 때 이런 경전은 대체로 紀元 前後에 편찬되었다고 생각되어 진다. 역시 이 신앙은 다시 소급해서 생각해 보면 대체로 紀元前 일세기 경에 소박한 아미타불신앙이 생기지 않았는가 라고 추측된다. 그러므로 다음에 어떠한 이유에 의해 이러한 신앙이 불교교단의 內部 로 부터 발생했는가 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불교 교단은 크게 나누어 출가교단과 재가교단으로 나눌 수가 있다. 출가교단이 라는 것은 석존의 가르침을 받들고 專心으로 佛道의 수행에 힘쓰는 출가자(比丘)의 집단이다. 在家敎團이라는 것은 出家敎團을 支持하고, 귀의하여 그 출가자의 가르침을 받드는 在俗信者의 집단이다. 대체로 기원 전후의 頃부터 불교교단 가운데 출가비구의 교단과는 다른 在家의 불교신자의 단체가 인도 各地에서 成立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가지고 苔提薩타(bodhisattva) 즉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 라고 불렀다. 이 보살인 멍칭은 원래 석존의 前生을 말하는 이야기(本生譯) 중에 석존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온 것이지만, 자기들도 석존과 같이 佛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부를 수 있다 라고 확신하여 사용하는 듯한 다. 이러한 在家信者의 집단 가운데는 출가비구의 교단에 참가한 사람도 상당히 많아 이러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대승불교 운동이 흥기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대승불교는 在家敎團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것이 지만, 이때 편찬된 대표적인 불교경전은 『반야경』 『법화경』 『유마경』 『화엄경』 등이 있다. 아미타불신앙도 이러한 재가교단의 사람들이 제창한 新佛敎運動(대승불교운동)의 일환으로 興起하고 『무량수경』 둥의 대표직인 아미타불 경전은 이런 사랑들에 의해 편찬된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여 지고 있다. 따라서 이 새로운 불교운동은 釋尊의 遣法을 保守的인 출가교단의 사람들에게 맡겨 둘 수 없다고 하는 일부 진보적인 출가교단의 사람들과 在俗信者가 석존의 참 정신의 현양이라고 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낸 것일 것이다. 이것은 석존의 참된 모양으로 아미타불을 이해하지만, 다른 어떠한 불교도의 석존 이해보다도 眞精神울 파악하고 있다고 하는 信念과 함께 생각해 낼 것이다. 保守的인 출가교단의 고갈에 대해 在家敎團의 사람들과 一部 진보적인 출가교단의 사람들에 의해 석존 참된 자세로서 묘사된 것이 아미타불인 부처님일 것이다 라고 말하여지고 있다.
다음에 아미타을신앙의 興起가 대승불교의 흥륭에 관계있는 곳으로 부터 『무량수경』에 설한 法藏比丘의 출가와 成道 및 十方諸佛國으로 부터 보살의 西方淨土往詣의 說話에 관련하여, 대승불교도가 보살도를 닦는 理想的인 사람으로 法藏比丘를 보살도의 완성자로서 아미타불을 생각해 냈다. 現世에는 쉽게 보살도를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淨土를 보살도 완성의 道場(장소)으로서 十方諸國보다 서방정토에 많은 보살의 往詣를 例示하고 西方往生을 설한 것이 그 처음이 아닌가 라고 말해 지고 있다.
여하튼 불교교단의 내부에서 아미타불신앙이 발생하여 이 부처 님을 섬기는 아미타불교도에 의해 경전이 편찬되기에 이르렀지만, 편찬된 아미타불 경전은 시대와 함께 차차 增補, 改竄도고 또 別種의 것도 편찬되었다. 점차로 인도, 西域地方에 널리 또는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에 散說되게 되었다. 이것이 중국에 전래되어 현존의 많은 아미타불 경전을 볼 수 있게 되였다.
▲TOP
●좀더 자세한 자료를 원하시면
여래장 출판의 정토교개론(한보광역)서적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