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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과 칭념

1. 관념의 염불
(ㄱ) 염불의 의의
(ㄴ) 왕생론주의 설
(ㄷ) 관경소의 설
(ㄹ) 왕생요집의 설

2. 칭명염불
(ㄱ) 제경전에서 설하는 칭명
(ㄴ) 용수의 칭명불퇴설
(ㄷ) 세친, 담란의 칭명
(ㄹ) 도작, 가재의 수량신앙

 

觀念과 稱名

 

1. 관념의 염불
(ㄱ) 염불의 의의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을 처음으로 제경론(諸經論)에서는 정토왕생을 닦는 行으로서, 여러 가지를 설하여 밝히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중국, 한국, 일본의 정토교가(淨土敎家)에 있어서 중시되는 것은 염불이다. 이것에는 관념觀念과 칭명稱名의 이의二義가 포함되어 있다.

현재에는 일반적으로 염불이라 하면, 칭명염불(稱名念佛)을 가르치고 있지만 염불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는 광범하다. 고대에는 사념(思念), 상념(想念), 관념(觀念) 등을 가르치는 말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먼저 관념(觀念)의 염불에 대하여 기술하고져 한다.

염불이란 글자의 뜻과 같이 「佛을 염하는 것」으로 念은 샨스크리뜨語로 스므리티(Smriti)의 번역이다.

「想起하다」「記憶하다」라고 하는 의미이다. 그러나 念은 이외에도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觀念, 思念, 心念, 憶念, 想念, 稱念과 같은 熟語로 사용되고 있다. 또 佛이라는 文字도 佛身, 佛名, 覺, 眞如實相의 理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단지 염불이라고 하는 경우에 엄밀히 생각하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말인가 분명하지 않다.

天台의 지의(智 )는 『마하지관(摩詞止觀)』에서 염불을 그 내용상으로 五種으로 구분하고 있다. 즉 稱名왕생염불삼매문(往生念佛三昧門), 관상멸죄염불삼매문(觀相滅罪念佛三昧門), 제경유심염불삼매문(諸境唯心念佛三昧門), 심경구리염불삼매(心境俱離念佛三昧門), 성기원통삼매문(性起圓通三昧門)이다. 이와 같이 처음의 칭명왕생염불삼매문(稱名往生念佛三昧門)이란 稱名을 염불하는 것을 말하며, 이하의 넷은 觀念을 염불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구체적인 사상(事象)을 관념(觀念)하는 것으로부터 추상적인 이념(理念)을 관상(觀想)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염불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가장 원형적인 것은 「염불(念佛), 염법(念法), 염승(念僧)」의 하나인 염불인 것 같다. 이 三念의 하나인 「念佛」은 釋尊의 在世 당시에 있어서는 석존에 대한 귀경(歸敬)의 생각으로 의빙사모(依憑思慕)의 마음을 말하고 있지만, 석존이 입멸하신 뒤는 부처님의 추모(追慕), 佛의 억상(憶想, 憶念)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거기에 석존의 유법(遺法)과 교단에 대한 귀경(歸敬)을 나타내는 생각(念法, 念僧)이 附加되어 三念의 사상이 생겼다고 생각된다.

  석존의 재세당시, 불교교교단에 입문함에 있어서 佛에 귀경하고, 佛을 念하여 佛의 이름을 부르는 구두의례(口頭儀禮)가 一定의 의칙(儀則)으로 보편화되어 온 것이 칭념(稱念)의 사상이다. 이미 「나무불타(南無佛陀)」라고 부르는 창명(唱名)의 생각이 『 아함경(阿含經)』등의 오래된 경전에서 보인다. 그리고 다음에 이 佛의 名을 부르는 것은 불제자(佛弟子) 및 신자들이 위해(危害)에 당하여 마음에 공포를 갖거나 또는 감격스러운 때가 있었을 경우에 저절로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리하여 佛에 귀경(歸敬)하고 佛을 念하는 염불사상은 稱名의 사상을 생기게 하고 佛에 대한 追憶의 念은 觀念으로 불도수행의 기본적인 행으로 크게 발전했다고 생각된다.

정토교에 있어서도 인도, 중국, 한국, 일본을 통하여 이 觀念과 稱名은 정토왕생을 위한 중요한 행이다. 관념의 觀은 샨스크리트語의 비파샤야나(Vipasyana 毘鉢舍那)의 譯으로 「分別하여 보는 것」을 意味하며, 지혜를 가지고 現象의 體性과 相狀 等을 분별하고 認知하는 것을 말한다. 석존이 6년에 걸친 고행생활의 헛됨을 알고 고행을 中止하고 니련선하(尼連禪河)에서 목욕하고 유미(乳 )에 의하여 체력을 회복하여 가야촌(伽耶村)의 필발나수(畢鉢羅樹)의 아래에서 정관(靜觀)을 집중시켜, 마침내 「깨달음」을 열었다고 말한다.

이 석존의 정관(靜觀)은 관상(觀想)의 것으로 이 관상관념(觀想觀念)은 불도수행의 기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것은 관념(觀念), 관찰(觀察), 관상(觀想), 선관(禪觀)과 같은 말로 사용된다. 고요한 곳에서 정신을 통일하여 명상에 들어서 마음으로 연기(緣起)의 도리 또는 부처님의 상호(相好) 등을 관상사념(觀想思念)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관상(觀想)하는 내용이 추상적인 이념(理念)인 경우를 현관(現觀)이라고 하고, 구체적인 사상(事象)을 관상(觀想)하는 것을 사관(事觀)이라고 한다. 사관(事觀)이란 제법실상(諸法實相)을 觀하며, 제법개공(諸法皆空)을 觀하며, 佛의 법신(法身), 실상신(實相身)을 관상(觀想)하는 것을 말한다. 백골(白骨)을 관상(觀想)하는 백골관(白骨觀), 佛의 신체에 갖추어진 삼십이상호(三十二相好)를 觀하며, 또 극락의 삼천국토(三川國土)를 관상(觀想)하는 것을 事觀이라고 한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의 하나인 『무량수경(無量壽經)』 에서는 삼배왕생단(三輩往生段)에서 「일향전염무량수불(一向專念無量壽佛)」이라고 설하므로 아미타불을 專念할 것을 설한다. 또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서는 아미타불 및 정토의 광경을 관상(觀想)할 것을 상세히 설하고 있다.

 

(ㄴ) 왕생론주(往生論註)의 說

담란(曇鸞)은 천친(天親)의 『왕생론(往生論)』을 주석(注釋)하여 『왕생론』二券을 저술하여 왕생행으로서 설하는 오념문(五念門)의 관찰문(觀察門)에 있어서 정토를 국토장엄(國土莊嚴), 불장엄(佛莊嚴), 보살장엄(菩薩莊嚴)으로 분류하였다. 다음에 국토장엄으로 17종, 불장엄으로 8종, 보살장엄으로 4종의 도합 29종의 장엄을 관찰할 것을 설하고 있다.

 

국토장엄(國土莊嚴, 十七種)

1. 청정공덕(淸淨功德)= 정토는 안락하고 청정한 곳으로 미계(迷界)인 삼계(三界)가 허가불정(虛假不淨)함에 대하여 이러한 것이 없는 것이다.

2. 양공덕(量功德)= 정토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하여 허공과 같은 것이다.

3. 성공덕(性功德)= 정토는 본성(本性)으로 청정하며 정도(正道)의 대자비, 출세의 선근(善根)으로부터 생기며, 법성(法性)에 수순(隨順)하며, 법성(法性)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4. 형상공덕(形相功德)= 정토는 광대무변하지만, 그러나 청정한 광명이 비치지 않는 곳이 없이 전정토(全淨土)를 비춘다. 그리고 정토의 보수보루(寶樹寶樓) 等의 만물이 모두 광명을 가지고 일체를 비추는 것이다.

5. 종종사공덕(種種事功德)= 정토의 종종의 장엄이 모두 진묘(珍妙)의 보배로서 미묘하게 장엄된 곳. 정토의 보수보지보(寶樹寶池寶)樓 等이 김은류리(金銀瑠璃)의 等의 보배로 되어 있으며 미묘하게 장엄된 것.

6. 묘색공덕(妙色功德)= 정토에 광명의 빛은 광대하며, 중생세간(衆生世間, 人間의 世界)과 인간이 사는 국토(器世界)를 비추어도 장해하는 것이 없는 것.

7. 촉공덕(觸功德)= 淨土에 잇는 일체의 장엄은 모두 유연하여 이것에 접촉된 것은 많이 수승한 樂을 얻을 수 있다.

8. 三種功德= 지수(池水)와 대지와 허공의 장엄을 말한다.

Ⅰ. 水功德=정토의 유천지소(流泉池沼) 등의 공덕의 일로서 대수(大水)의 난(難), 유수(流水)의 難은 없고 지수(池水)에는 보화(寶華)가 흩어져 있으며, 미란회유(微瀾廻流)하며 쾌락이 무궁한 경우

Ⅱ. 지공덕(地功德)=정토의 대지는 평탄하며 궁전누각 등이 자유롭게 세워져서 장엄되어 있는 것

Ⅲ. 허공공덕(虛空功德)=정토에서 허공의 장엄을 말하는 것으로 보배로 장식된 보망(寶網)이 大空에 걸려있고 요령이 미묘한 法音을 연주하는 것.

9. 양공덕(兩功德)= 천화(天華, 묘한 花)와 妙衣(가장 뛰어난 외복)등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정토의 대중이 佛에게 공양할 물건이 되는 일.

10. 광명공덕(光名功德)= 정토에 있어서 광명이 수승한 이익을 베푸는 일

11. 묘성공덕(妙聲功德)= 서방정토의 명성이 멀리 시방세계에 들리고, 이것을 듣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는 일

12. 주공덕(主功德)= 정토의 의보장엄(依報莊嚴)이 主佛인 아미타불에 의하여 잘 住持되는 일

13. 권속공덕(眷屬功德)= 아미타불의 권속인 많은 성중은 모두 같이 佛의 正覺의 華로 부터 나며, 一味 평등으로 우열불동(優劣不同)이 없는 것.

14. 수용공덕(受用功德)= 정토의 聖衆이 불법과 선정삼매(禪定三昧)를 가지고 受用의 食으로 하는 일.

15. 무제난공덕(無諸難功德)= 淨土에서는 身心에 있어서 제난(諸難)이 없고 안락이 끊어지지 않고 상속(相續)하는 것.

16. 대의문공덕(大義門功德)= 淨土에는 대승의 善根世界로서 평등일미이기 때문에 根欠의 사람과 여인의 이름마저도 없는 수승한 덕이 있는 국토라고 하는 것.

17. 소구만족공덕(所求滿足功德)= 또는 일체소구만족공덕(一切所求滿足功德)이라고도 한다. 정토는 왕생한 중생의 원에 따라서 구하는 것을 실지로 만족시켜 주는 공덕이 있는 곳.

 

불장엄(佛莊嚴, 八種)

佛에 관한 장엄에 있어서 八種으로 나누어 설하고 있다.

1. 좌공덕(座功德)= 아미타불에 앉아 있는 주위 연화대의 미묘엄려한 것.

2. 신업공덕(身業功德)= 아미타불의 身業에 미묘한 相好功德이 있는 것.

3. 구업공덕(口業功德)= 아미타불의 口業의 공덕에 있어서 佛의 妙聲이 시방세계에 울려퍼져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

4. 심업(心業)공덕= 아미타불이 平等無分別智를 가지고 그 心嶪을 장엄한 것.

5. 대중공덕(大衆功德)= 淨土의 대중은 똑같이 佛의 智惠淸淨海로부터 나며 純淨한 공덕이 있음.

6. 상수공덕(上首功德)= 정토의 上首인 아미타불은 最尊으로 聖衆에게 공경받는 것.

7. 주공덕(主功德)= 정토의 교주인 아미타불이 정토의 대중에게 공경받는 것.

8. 불허작주지공덕(不虛作住持功德)= 아미타불의 본원력(本願力)은 허망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불의 행자를 속히 정토의 보해에 견불 성취하도록 하는 공덕이 있는 것.

 

보살장엄(菩薩莊嚴, 四種)

보살에 있어서 四種의 공덕을 나타냄

1. 부동이지공덕(不動而至功德)= 정토의 보살은 정토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방세계에 잇는 중생을 化益하게 하는 일.

2. 일념변지공덕(一念遍至功德)= 정토의 보살이 一念이라고 하는 극히 짧은 시간에 빠짐없이 일체의 세계에 이르러 대중을 이익하게 하는 일.

3. 무상공양공덕(無想供養功德)= 天의 꽃과 음악과 묘의(妙衣)와 묘향(妙香)으로 공양하고 제불의 공덕을 찬탄함에 분별의 마음을 일으키지 아ㅎ는 일.

4. 시법여불공덕(示法如佛功德)= 보살이 無佛의 세계에 가서 佛, 法, 僧의 삼보를 住持하고 佛이 계심과 같이 佛의 종자를 끊지 않도록 하는 일.

이상의 국토장엄에 17종, 불장엄에 8종, 보살장엄에 4종의 도합 29종의 장엄을 대상으로 觀相하는 것을 관찰문(觀察門)이라고 말하고 있다.

 

(ㄷ) 관경소(觀經疏)의 說

다음에 『관경(觀經)』의 교설에 의해 아미타불 및 극락정토의 觀相을 가장 상세히 또한 구체적으로 설한 사람은 중국의 선도(善導)이다.

선도(善導)는 『관경소정선의(觀經疏定善義)』(淨全2권 p.47)에서

지금 이 觀門 等은 오직 方을 가르치고 相을 세워(指方立相)마음을 머물러 경계를 생각하여 모두 無相理念을 밝히지 않는다. 여래는 멀리 떨어져도 알고 내려 주신다. 末代罪濁의 범부의 상을 세워 마음이 머물러도 얻는데 가능하지 않는데 어찌 하물며 相을 떠나는 일을 구하랴.

라고 설한다. 佛은 산란심의 범부에게 觀相을 달성하기 위하여 장소를 서방의 一處에 정하고 구체적으로 극락정토의 광경(事象)을 나타낸 보인다고 말한다. 그래서 극락을 觀相하는데 대하여 태양이 眞東으로 眞西에서 지는 春秋의 두 계절을 택하여 해가 지는 때에 서쪽으로 향하여 正坐하고 마음을 조용히 하여 觀相하는 것을 말한다. 그 시기와 13종류의 觀相의 방법을 나타내고 있다. 그 十三觀이란

一. 일상관(一相觀)- 日沒觀이라고도 한다. 태양이 正西로 지는 것과 같이 북을 공중에 달아 두었듯이 觀하며, 정토의존재와 자기의 죄업 및 정토의 아름다움을 觀함.

二. 수상관(水想觀)- 淨土의 평탄한 유리의 大地를 觀相하는 前方便으로서 먼저 청저한 水를 想念하며, 다음에 물을 변화시켜 얼음이 되게 하고 얼음이 투명하게 빛나고 있는 것만큼 정토의 유리의 大地를 觀相함.

三. 보지관(寶地觀)- 유리와 大地 위에 있는 황금의 道, 누각(樓閣), 화당(華幢) 등의 하나 하나를 觀하여 소명하여 잃지 않도록 한다.

四. 보수관(寶樹觀)- 정토에 있는 칠보의 수림(樹林)과 그 수목으로 부터 나오는 광명에 대하여 觀한다.

五. 보지관(寶池觀)- 팔공덕수(八功德水)가 충만한 칠보의 못을 觀하고 지수(池水)는 흘러 많은 소구(小溝)로 되며, 연화의 꽃은 피고, 흐르는 물소리는 苦, 空, 無常無我의 法을 설하고 있음을 觀함.

六. 보루관(寶樓觀)- 정토의 칠보 누각중에 많은 天人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이 음악은 모두 삼보를 念하도록 설하고 있음을 觀함.

七. 화좌관(華座觀)- 佛이 坐하고 계신 연화대좌를 觀하는 일. 이것은 백보색(百寶色)의 연화로 만들어 져서 사우(四隅)에 사체의 보당(寶幢)이 있고, 위는 만막(慢幕)으로 처져 있다. 이 慢幕은 빛이 찬란한 寶珠로 장식되어 정토를 비추고 있는 것을 觀함.

八. 상상관(像相觀)- 佛像을 觀相하는 것으로 하나의 대연화(大蓮華)의 위에 빛이 찬란한 아미타불의 앉아 계시는 모습을 관하며 이어서 좌우에 같은 관음세지의 두 보살이 앉아 계시는 모습을 觀한다. 다음에 이러한 三尊이 정토에 가득차 계시는 모습을 觀한다. 이 觀法이 성취된다면 이 觀相의 行者는 정토의 水流와 광명이 묘한 법을 설함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九. 진신관(眞身觀)- 아미타불의 眞實身을 觀하는 것이다. 이 佛의 높이는 육십만억나유타항하사유순(六十萬億那由他恒河沙由旬)이며, 미간의 백호는 오수미산(五須彌山)과 같이 크다. 눈은 사대해수(四大海水)와 같고, 후배(後背)의 후광(後光)은 백억의삼천대천세계보다 크며, 이 중에 백만억(百萬億)의 화불보살(化佛菩薩)이 계신다. 또 佛身에는 8만 4천의 묘상이 있으며, 하나 하나의 수형호(隨形好)에 8만 4천의 광명이 있고 일체의 세계를 비추고 염불의 중생을 섭취(攝取)하고 계심을 觀함.

十. 관음관(觀音觀)- 佛의 脇士인 관세음보살을 觀相하는 것이다. 이 보살의 높이는 팔십만억나유지유순(八十萬億那由池由旬)며, 身은 자금색(紫金色)으로 빛나고, 뒤에는 백천유순(百千由旬)의 圓光이 있으며, 五百의 化佛이 五百의 화보살(化菩薩)과 천인(天人)을 시자(侍者)로 두고 계신다. 이 보살은 마니보주(摩尼寶珠)로 장식된 천관(天冠)을 쓰고 그 가운데에 높이 이십오유순(二十五由旬)의 化佛이 계신다. 또 身은 광명으로 빛나는 영락(瓔珞)을 두르고 발을 옮길 때에는 금강마니(金鋼摩尼)의 꽃이 흩날리어 정토에 偏滿함을 觀함.

十一. 세지관(勢至觀)- 佛의 脇士인 대세지보살을 觀相하는 것이다. 이 보살의 높이와 身은 관세음보살과 같고, 頭上에 쓴 천관(天冠)은 五百의 보연화(寶蓮華)로 장식되어 있고, 육계상(肉 相)의 가운데에 하나의 보병(寶甁)이 있어 광명이 세차다. 이 보살이 걸을 때는 시방세계가 진동하고 오백의 보연화(寶蓮華)가 흩날린다.  十方에 계시는 分身의 아미타불, 관음세지 등의 三尊은 모두 정토에 모여 설법하시며, 고통받는 중생을 인도하시는 것을 觀함.

十二. 보관(普觀)- 자왕생관(自往生觀)이라고도 한다. 자기가 정토에 往生한 것을 觀하는 것으로 정토에 왕생하여 연화가 열려 불보살이 허공에 가득하며, 정토의 水鳥와 水林이 묘법을 설함을 생각함.

十三. 잡상관(雜相觀)- 雜多한 佛身을 觀하는 것으로 정토의 보지(寶池)에 일장육척(一丈六尺)의 佛像이 있음을 觀한다. 또 시방세계에 身을 변현(變現)시켜 小身과 大身을 나타내며, 일체의 것을 교화함을 觀함.

선도(善導)는 『관경(觀經)』에서 설하는 이 十三觀에 의해 정토의 장엄과 불보살을 觀相할 것을 설한다. 이러한 觀法을 행하는 것은 무량겁의 사이에 있어서 더렵혀진 생사의죄를 멸하고,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말하고 觀相(念)滅罪往生을 설하고 있다.

 

(ㄹ) 왕생요집(往生要集)의 說

법연(法然)의 정토교를 낳게한 모체인 원신(源信)의 『왕생요집(往生要集)』을 보면, 정토왕생의 행으로서 담란(曇鸞), 선도(善導) 등이 중시한 오염문(五念門)을 취급하여 정수념불(正修念佛)이라고 이름하여

五念門의 行을 닦아 성취하면, 필경으로 안락국토에 태어난다. 아미타불을 친견함을 얻는다.

라고 한다. 이 五念門을 중요한 정토왕생의 행이라고 한다. 이 五念門 가운데에 源信이 특히 중시한 것은 관찰문(觀察門)으로 이것에 별상관(別相觀), 총상관(總相觀), 잡약관(雜略觀)의 세 가지를 설하고 있다.

별상관(別相觀)이란 아미타불의 佛身의 부분에 대하여 觀相하는 것으로 처음에 『觀經』에서 설하는 바와 같이 화좌관(華座觀, 座臺를 觀함). 이어서 불신의 42相에 대하여 하나 하나를 관상하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 42상이란, [도표]

1. 頂上의 肉営相(頭上의 살갗이 올라옴)

2. 髮毛의 上向相

3. 髮際의 光明相

4. 耳의 廣長相

5. 額의 廣正相

6. 面輪(顔)의 圓滿相

7. 眉間白毫相(白毛의 덩어리)

8. 眼睫의(속눈섭)의 齊整相

9. 佛眼相

10. 佛鼻相

11. 佛肩相

12. 佛齒相

13. 佛牙相

14. 佛舌相

15. 舌下의 寶珠相

16. 佛咽喉相

17. 頸의 圓光相

18. 頸의 三光相

19. 欠揀骨(結喉)의 滿相

20. 肩頂의 圓滿相

21. 腋下의 充實相

22. 臂狪의 傭圓相

23. 諸指의 纖長相

24. 指間의 忣網(물갈퀴와 같은 막)相

25. 手의 柔軟相

26. 稟臆(아래턱)의 廣大相

27. 胸의 卍字相

28. 心相의 紅蓮華相

29. 身皮의 金色相

30. 身光의 無邊相

31. 身相의 端嚴相

32. 體相의 量等相

33. 容儀의 洪滿相

34. 陰藏의 金色相

35. 兩足 등의 七處充滿相

36. 雙田(정강이)의 纖圓相

37. 足外(뒤꿈치)의 圓滿相

38. 足跌의 修高相

39. 身毛의 宛轉相

40. 足下의 千幅輪相

41. 足下의 平滿相

42. 足下의 蓮華相



 

『왕생요집(往生要集)』은 이 하나 하나의 관상(觀相)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42상의 경우 頂上의 肉 相으로 시작하여 足下의 연화상(蓮華相)까지 차차로 아래로 내려오면서 관상(觀相)하는 것을 순관(順觀)이라고 하며, 족하(足下)의 연화상(蓮華相)으로 부터 정상의 육계상(肉 相)까지 逆으로 올라가면서 관상하는 것을 역관(逆觀)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하여 순역십육편(順逆十六遍)을 행하도록 설하고 있다.

  다음에 총상관(總想觀)이란 아미타불의 佛身의 전체를 관상(觀想)하는 것으로 『觀經』의 불신관(佛身觀)에서 설하듯이 우선 처음에 광대한 연화대상(蓮華臺上)에 앉아 계시는 아미타불을 관상(觀想)한다. 이 佛身은 염부제금색(閻浮提金色)으로 빛나며, 높이는 육십만억나유타항하사유순(六十萬億那由他恒河沙由旬)이며, 미간의 백호상은 5수미산만큼 크며, 눈은 사대해수(四大海水)와 같이 넓으며, 또 청백(淸白)에 대하여 身의 모공(毛孔)으로부터 수미산과 같이 큰 광명을 놓고 계시며 念佛의 중생을 攝取하고 계심을 觀한다.

그리고 다음에 佛의 모습이 꼭 金色의 山이 大海의 가운데우뚝 솟아 빛이 찬란하고, 일체의 것은 빛이 찬란한 광명 때문에 숨겨지며, 오직 광명의 大海 가운데에 계시는 것과 같이 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佛의 應化身, 報身, 法身에 대하여 觀하고, 다음에 觀相하는 佛의 相好는 삼신즉일신(三身卽一身)의 상호광명(相好光明)인 것을 觀想하는 것이다.

잡약관(雜略觀)이란 미간의 백호상만을 觀하는 것이다. 백호상은 5수미산과 같이 크며 그 중에 8만 4천의 好相이 있으며, 하나 하나의 好相중에 8만 4천의 광명이 있다. 시방세계를 비추고 念佛의 중생을 攝取하고 계시는 것을 觀한다. 또 자신이 정토에 태어나 연화의 위에 앉아서 佛의 백호상을 觀하고 五白色의 광명이 우리 몸을 비추고 있음을 觀함.

그리고 다음에 이 觀法의 극략(極略)을 원하는 것은 백호상만을 취급하고, 파이주(頗梨珠)와 같이 됨을 觀한다. 또 광명이 우리들을 비추고 계심을 觀하고 그 위에 모든 중생과 함께 안락국(安樂國)에 왕생할 것을 願할 수 있다고 한다.

다음에 원신(源信)은 정토왕생의 행으로서 오염문(五念門)의 관찰문(觀察門)에 있어서 上記한 바와 같이 별상관(別想觀), 총상관(總想觀), 잡약관(雜略觀)의 三觀을 說하고 정토왕생의 要行으로 하지만, 그러나 이 觀法의 설명으로 다음에

만약 상호를 觀念함에 깊어지지 않는 사람은 어떤 이는 귀명상(歸命想)으로, 어떤 이는 인섭상(引攝想)으로, 어떤 이는 왕생상(往生想)에 의하여 一心으로 稱名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작작(語默作作) 늘 이 생각을 가지고 흉중(胸中)에 일으키기를 배고픈 사람이 밥을 생각하듯이 목마른 자가 물을 구하듯이 하라. 어떤 이는 低頭擧手로 어떤 이는 擧聲稱名으로 外儀는 다르더라도 心念 항상하며, 念念相續하여 寤寐에서도 잊어서는 안된다.

라고 한다.  귀명상(歸命想), 인접상(引接想), 왕생상(往生想)의 三想에 머물러 稱하는 稱名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원신(源信)의 本意는어디까지나 觀念으로 이것에 깊어지지 않는 사람만이 稱念을 行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와 같은 觀念은 중국, 한국, 일본의 淨土敎家들이 어느 것이나 같이 중시하는 往生行이다. 그 方法에는 광약(廣略), 정조(精粗), 종종의 다른 것이 있지만, 정토왕생의 행으로서 누구나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觀念을 전면적으로 폐사(廢捨)하고, 단신칭명(單信稱名)의 염불만에 의한 정토왕생을 설하는 것이 法然의 정토교이다.

 


 

2.  칭명염불(稱名念佛)

(ㄱ) 제경전에서 說하는 칭명

佛의 이름을 불러 존경의 생각을 나타내어 歸依의 心情을 披瀝하거나 또는 佛의 加護를 원하는 口稱儀禮는 이미 석존의 재세당시부터 불제자 및 신자의 사이에 있어서 널리 행하여져 왔다. 이 시초라고 생각되는 것은 삼귀(三歸: 歸依佛, 歸依法, 歸依僧)의 마음이라고 述할 수 있을 것 같다. 석존이 입멸하신 뒤 차차 해가 지날수록 이것에 주술적(呪術的), 수행적(修行的) 또는 기도(祈禱), 기원적(祈願的)인 의미가 첨가되어 왔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第十六(정장12권 p.458)에 의하면 교살라국(橋薩羅國)에서 도적의 무리가 失目하여 南無佛陀와라고 하므로서 눈이 밝아진 것을 記述하고 있다. 『撰集百綠經』 卷一(正藏4권 p.204)에는 商人이 海難을 당하여 나무불(南無佛)이라고 창하므로 難을 면하고 珍寶를 얻었다고 설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야기에 나오는 稱名은 주술적 기도적인 의미의 稱名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法華經』 방편품(方便品, 正藏9권 p.9)에

만약 사람이 산란한 마음으로 탑묘(塔廟)의 안에 들어가서 한번만이라도 남무불(南無佛)이라고 稱하면 모두 佛道를 성취한다.

라고 하는 것은 수행적 기원적인 稱名이라고 생각된다. 또 『문수반야경(文殊般若經)』 卷下(정장8권 p.731)에서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서 일행삼매(一行三昧)에 들어 가고자 하는 자는 먼저 공한처(空閒處)에서 모든 난의(亂意)를 버리고 상모(相貌)를 취하지 말고, 마음을 일심으로 매어 두고, 오로지 名字를 칭하며, 佛의 方所에 따라서 단신정향(端身正向)하여 능히 一佛에 있어서 염염상속(念念相續)하라. 즉 이 念의 가운데에서 능히 과거, 미래, 현재의 諸佛을 볼 수 있다.

라고 한다. 이것은 일행삼매(一行三昧)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稱名을 설하는것이기 때문에 수도적인 稱名이라고 생각된다. 다음에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에서는 佛名을 칭하므로 인하여 백천겁의 번뇌의 중장(重障)을 除한다고 말한다.

『觀經』의 下品下生에서는

『너희들이 만약 念할 기회가 있으면 곡 무량수불을 칭하여라고』 한다. 이와 같이 지심으로 소리를 끊지 않고 十念을 구족하게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칭하자, 佛名을 칭하는 까닭에 念念의 중에 80억겁의 생사의 죄를 除하고, 명종시(命終時)에 금연화(今蓮華)의 편편한 일륜(日輪)이 그 사람의 앞에 머물러 있음을 본다. 一念의 사이에 극락세계에 왕생함을 얻는다.

라고 한다. 稱名에 의하여 滅罪와 정토왕생을 설하고 있는데 이것은 祈願의 稱名이라고 생각된다.

 

(ㄴ) 용수(龍樹)의 칭명불퇴설(稱名不退說)

이와 같이 원시경전을 처음으로 하여 대승경전, 정토교, 여러 경전에서는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稱名思想을 설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각을 이어서 稱名에 의해 보살도를 성취하고, 불퇴전위(佛退轉位)에 들어갈 것을 설한 것은 인도의 용수(龍樹, 2∼3世紀)가 저술한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의 易行品이다.

龍樹는 대승불교를 받들어 보살이 阿惟越致(불퇴의 位)에 도달함에 難行道와 易行道의 二種의 길이 있다.

身命을 아끼지 않고 육바라밀(六波羅密)을 행하고 정진노력하여 긴 시간에 걸친 수행을 닦아 불퇴의 位에 들어 가는 것을 난행도(難行道)라고 이름하여, 諸佛의 명호를 칭하고, 억념(憶念)하며 공경예배하여 쉽게 不退의 位에 도달하는 것을 이행도(易行道)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 난행도(難行道)를 육로(陸路)의 步行에 이행도(易行道)를 水路의 승선(乘船)에 비유하고 있다. 이 이행도(易行道)에 있어서 諸佛의 名號를 稱함에 대하여 『이행품(易行品)』에서는 동방선덕불(東方善德佛) 등의 현재시방십불(現在十方十佛), 아미타불 등의 현재의 百七佛, 毘婆尸佛등의 과거의 七佛및 미래의 미륵불, 다음에 동방의 德勝佛 등의 八佛, 과거 현재 미래의 三世諸佛, 다음에 善意 등의 百四十二 보살을 밝히고 稱名을 권하여 속히 불퇴의 位에 도달할 것을 설하고 있다.

이 龍樹가 『易行品』에서 설하는 稱名은 一佛의 稱名만 아니고 제불 제보살의명호이다. 이렇게 많은 제불보살의 명호를 칭함에 의하여 阿惟越致(不退의 位)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나, 稱名에 의한 정토왕생은 아니다. 그러나 稱名에 의하여 보살도를 성취하고 不退의 位에 들 수 있다고 하여 보살도의 하나로 稱名을 취급하고 있는 것은 注目할 만 하다.   

 

(ㄷ) 世親, 曇鸞 稱名

龍樹의 뒤에 출현한 世親(天親) (5世紀)은 往生論에서 정토왕생의 行으로서 五念門을 설하는 중에 第二讚歎門에서

如何히 찬탄할 것인가, 口業으로 찬탄하라. 그 여래의 이름을 稱하고, 그 여래의 光明智相과 같이 그 名義와 같이 여실히 수행하여 相應하고져 하기 때문에.

라고 설하여 口業에 의한 찬탄을 설하고 있는데, 아미타불 또는 無 光佛, 無量光佛이라고도 한다. 광명의 덕이 있어서 특히 수승한 부처님이기 때문에 무애광불(無愛光佛),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 하는 명호를 칭하고 있는데, 그대로 佛을 찬탄하는 의미라고 한다. 칭명으로 佛을 찬탄하는 행이며, 함께 정토왕생의 행이 되기도 한다.

이 천친(天親)의 『왕생론(往生論)』에서 설하는 생각을 이어 받고, 다음에 龍樹가 『이행품(易行品)』에서 설해 밝힌 稱名易行의 설에 의해 彼土不退와 자 此土不退에 대하여 難行易行의 二道를 밝힌 사람은 중국의 담란(曇鸞, 476∼542)이다. 曇鸞은 『往生論註』에서 정토에 왕생하여 不退를 얻은 것을 이행도(易行道), 此土에서 不退를 얻은 것을 난행도(難行道)라고 한다. 따라서 龍樹가 말한 이행도(易行道)란 선덕불(善德佛) 이하의 많은 제불보살의 명호를 칭하는 것인데, 曇鸞은 정토에 왕생하여 不退를 얻기 때문에 정토의 敎主인 아미타불 一佛만의 칭명을 이행도(易行道)라고 한다. 그리고 명호를 칭하면 佛力의 住持가 있다고 한다.  佛力이란 佛의 他力의 것으로 이것이 佛의 本願力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曇鸞代에 왕서 아미타불의 불명을 칭하는 것이 불퇴를 얻기 위한 정토왕생의 요행이라고 함에 이르른 것은 주목할 만 하다.

 

(ㄹ) 道綽, 迦才의 數量信仰

담란(曇鸞)의 뒤를 이어 칭명염불(稱名念佛)의 수량신앙(數量信仰)을 고취시킨 사람으로 도작(道綽, 562∼645)이 있다. 道綽은 末法의 今時에 相應하는 가르침으로 정토교가 가장 상응하는 가르침이라고 하여, 『安樂集』(淨全1권 p.674)에서

今時의 중생은 즉 佛께서 세상을 가신지 4,5백년이 되었고, 참으로 참회수복(懺悔修福)으로 佛의 명호를 稱해야 할 때이다. 만약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칭하면, 능히 80억겁 생사의 죄를 除한다. 일념에 이러하니 하물며 常念을 修하는 것이란, 즉 이 항참회(恒懺悔)의 사람된다.

라고 하여, 칭명멸죄(稱名滅罪)를 설할 뿐만 아니라 미타의 명호를 칭하여 안락국에 生하기를 원하면 성성(聲聲)사이에 십염(十念)을 성취하고....라고 하고 『觀經』의 下品生에서 설하는 稱名往生의 설에 의하여 稱名念佛에 의해 정토왕생을 권하고 있다. 이 도작(道綽)의 염불사상(念佛思想)에 대하여 특이 주목되는 것은 『아미타경』의 若七日의 설에 의하여 稱名의 수량신앙(數量信仰)을 설하고 있다.

도선(道宣)이 저술한 『속고승전(續高僧傳)』 제 20권(정장51 p.594)의 도작(道綽)의 條에 의하면

사람에게 권하여 아미타불을 念하게 하여, 어떤 이는 麻豆등의 물건을 사용하여 數量하였다. 한번 이름을 칭할 때 一粒을 건냈다. 이와 같이 하여 수백만곡(數百萬斛)을 쌓아 가는 것을 가지고 結을 향한다.........

또는 해마다 늘 자업(自業)으로 맣은 木變( )자를 꿰뚫어 가지고 수법(數法)으로서 모든 사중(四衆)에게 주어 그 칭념(稱念)을 세며, 몇번이고 정단(禎端)을 지난다...... 조금 틈만 있으면 입으로 불명(佛名)을 誦하여 일일칠만(日日七萬)번 할 것을 한정하여 소소 소리 사이에 주의하여 정업(淨業)을 넓힌다.

라고 한다. 칭명염불(稱名念佛)의 수를 세기 위하여 마두(麻豆)를 가지고 수를 세거나 또는 목변(木變,  )자의 수주(數珠)를 만들어 수량을 세는데 이용한다. 다음에 자신은 매일 칠만편(七萬遍)의 염불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칭명(稱名)의 수량이 많은 만큼 공덕이 뛰어나다고 하는 생각인 듯하다. 이 도작(道綽)이 설하는 염불의 수량신앙은 상기와 같이 『아미타경』의 若七日의 신앙을 설한 사람은 가재(迦才)이다.

가재(迦才)는 도작(道綽)과는 거의 동시대의 후배인데, 도작(道綽)이 『아미타경』의 약 7일의 염불사상에 의하여 설한 수량신앙(數量信仰)을 계승하여 약 7일의 염불은 백만편(百萬遍)의 염불로서 백만편염불(百萬遍念佛)의 신앙을 설했다. 迦才의 『淨土論』卷中에서

해석하여 말하기를 이 經(아미타경)에 의하면 소선근(小善根)이란, 헛된 발원이다. 광선근(廣善根)이란, 이 7일의 염불이다. 만약 능히 7일 염불로서 백만편(百萬遍)을 채우면 즉 왕생을 얻는다.

라고 기술하고, 염불백만편(念佛百萬遍)의 수행을 가지고 정토왕생의 행이라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에서 정토교가 傳來되어 차차 아미타불의 佛名을 칭하는 신앙이 성행하게 되었다. 수량의 다과(多寡)를 논하는 생각도 생기게 되었는데 이러한 칭명신앙(稱名信仰)은 主로 『觀經』의 칭명왕생설(稱名往生說)을 『무량수경(無量壽經)』의 본원사상(本願思想)으로 해석하며, 칭명(稱名)에 새로운 의미를 부과하여 佛의 본원(本願)의 행이라고 한 사람은 선도(善導)(613∼681)이다. 이것을 계승하여 편의선도일사(偏依善道一師)라고 稱하여 본원염불(本願念佛)의 위에서 다음의 선택인 의미를 첨가하여 이것에 의해 정토종인 일종(一宗)을 개창(開創)한 사람이 법연(法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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